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산 왕조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사산 왕조는 224년에 건국되어 651년 멸망하여, 400여 년간 지속됐던 [[이란]] 제국과 그 지배 왕조를 가리키는 말이다. [[페르시아]]인들이 세운 나라로 '사산 왕조 페르시아' 혹은 '사산조 페르시아'라고도 부른다. 역사 교과서에서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로 표기하고 있고[* 그래서 학생들을 꽤나 골치 아프게 한다. 확실히 페르시아, 파르티아, 사산 왕조 페르시아라며 연달아 비슷한 이름이 나열되어 있기에. 심지어 파르티아와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수도마저 같기에 어떤 나라와 교역했는가로 구분해야 한다.] 과거에는 사산조 페르시아라는 이름이 많이 쓰였다. 사산 가문의 [[아르다시르 1세]]가 건국한 직후 아르사케스 왕조 [[파르티아]]를 멸망시켜 [[서아시아]]의 패권국이 되었고, 수백 년 동안 [[지중해]]를 지배하던 [[로마 제국]]과 함께 서반구를 양분하는 강대국으로 군림했으나 7세기 초 [[아라비아]]에서 발흥한 [[아랍]] [[이슬람]] 세력의 공격으로 멸망했다. 사산 왕조란 말 그대로 왕가인 사산 가문을 가리키는 말이다. 왕가의 이름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[[아르다시르 1세]] 문서를 참고. 당대에 쓰인 국호는 'Ērānshahr'였는데, 파흘라비어(중세 [[페르시아어]])로 '[[아리아]]인/[[이란]]인의(Ērān) 영역(shahr)'이라는 뜻이다. 이는 오늘날 '이란'의 어원이기도 하므로, '''사산 왕조의 역사는 이란의 민족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.''' 이슬람교의 도래 이후 페르시아인들이 정치-군사 부문에서 주도권을 잃고 [[아랍인]]에서 [[튀르크]]인, [[몽골인]] 등 수많은 이민족들이 유입되었지만, 사산 왕조 시대에 형성된 '''[[이란]]'''이라는 강력한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.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페르시아 문화는 전근대 시대 내내 서아시아 지역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누렸으므로, 사산 왕조의 역사적 중요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.[* 실제로 사산 제국 이후 서아시아 지역을 차지한 이슬람 제국은 사산조의 문화와 과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, 유럽에서 라틴어가 학술 용어로 정착했던 것처럼 이슬람권에서 페르시아어를 안다는 것은 지식인의 증표처럼 받아들여졌다.] 중국에선 '파사국'(波斯國)이라 불렀다. [[신라]] 승려 [[혜초]]의 여행기 《[[왕오천축국전]]》에서도 파사국이 등장한다. 영어로 쓸 때는 보통 Sassanids, Sassanid Empire라고 쓰지만, 최근 학계에서는 페르시아어 ساسانیان(''sāsānīyān, 서서니연'') 표기에 더 가까운 Sasanian, Sasanian Empire라는 표기를 더 선호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